“현지화·전문화가 ‘넘버원’ 히든챔피언 성공 비결”
글로벌 경영의 선구자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

우리나라 기업사에서 영원무역은 새로운 성장모델을 제시한 기업으로 불린다. 많은 기업들이 문어발식으로 계열사를 늘려 가는 외형성장주의에 취해 있을 때, 영원무역은 ‘아웃도어’라는 한 우물만 고집해 오늘날 세계 최정상의 위치에 섰다. 갑과 을로 대표되는 우리 기업문화에서 영원무역의 성공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볼 때 영원무역은 을(하청)의 위치지만 질 좋고 세련된 아웃도어 의류를 만들고 싶어 하는 갑(원청)의 업체들에게는 반드시 손을 잡아야 하는 최고의 파트너다. 생산시설을 국내에 두지 않고 자기 브랜드가 아닌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는 기업 중에서도 영원무역의 위상은 단연 독보적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꼽는 가치주에 영원무역이 매년 이름을 올리는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회사설립 후 단 한번의 적자를 낸 적도 없다. ‘도전을 멈추지 말라’(Never stop exploring)는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의 슬로건처럼 영원무역의 도전은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다.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은 세계적 강소(强小)기업을 지칭하는 ‘히든챔피언’(Hidden Champion)을 사용하면서 공통점으로 △장기적 전망 △기업 집중력 △세계시장을 중시하는 점을 제시했다. 그리고 본사 직원이 수십명에 불과해도 100개가 넘는 해외지사를 거느릴 정도의 투명한 기업환경, 고객 의견을 경영이나 생산에 반영하는 시스템, 훌륭한 인재, 독특한 기업문화를 갖추고 있다는 점도 특징으로 꼽았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으면서 세계 시장 점유율 1~3위를 달리는 기업이 바로 헤르만 지몬이 말하는 히든챔피언이다. 국내 대표 아웃도어 전문 ODM업체인 영원무역이 바로 그런 회사다. 1974년 창립 이후 지금까지 아웃도어 한 분야에만 집중해온 영원무역은 1980년 업계 최초로 해외투자에 나서 현재 방글라데시, 중국, 베트남, 엘살바도르 등에 생산시설을 갖춰놓고 있다. 전 세계 직원 수만 6만여명에 달한다.


> 성기학 회장(왼쪽)은 전 세계 영원무역 공장은 99.9%가 현지인으로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성 회장은 그러면서 현지인을 책임자로 세워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제품을 만드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강조했다.


1980년 업계 최초로 해외투자 나서

손욱 교수(이하 손 교수) | 한국 기업들의 지나친 사업 다각화가 되레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영원무역은 회사 창립 이후 한우물만 파 오셨는데요. 최근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을 만한 히든챔피언(강소기업)을 많이 육성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영원무역의 성공 비결을 말씀해 주시죠. 

성기학 회장(이하 성 회장) | 대담과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요, 제 선친이 어릴 적 제게 “너무 산만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모든 것에 관심이 많다 보니 여기도 기웃거리고 저기도 기웃거린다는 지적이셨어요. 그래서 한 가지 일에 집중해서 오래해야 한다는 것을 굉장히 많이 가르치셨습니다. 아마도 제 선친께서는 제가 항상 이 일 저 일 하면서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시프트(변경)하는 것을 걱정하셨나 봅니다. 그런데 사실 저도 보니까, 그게 정말 맘처럼 잘 안되더라고요. 그때는 정말 그랬습니다. 지나고 나서 보니까 선친의 말씀을 실천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제가 사업 경력이 좀 깁니다(웃음). 15살 때부터 아버지 농장에서 매니저 노릇을 했는데요. 저희 집이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양파농장, 양파 씨(종자) 농장이었습니다. 여름방학 때면 일꾼 30명 정도를 모아 일을 시켰어요. 17살이던 고2 때까지 말입니다. 수확을 해서 선별하고 포장하고 팔고 하는 것이 방학 때 제가 하는 일이었어요. 요새 1만시간의 법칙이라는 얘기가 있잖습니까. 저는 모름지기 경영자라면 그 정도 오랜 시간을 공들여야만 신속하되 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손 교수 | 제가 듣기로 성 회장님 선친께서 한번은 수확을 끝내자 5만원을 주셔서 그 돈으로 회장님께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셨다고 하던데요. 그런 것들이 인생을 살면서 많은 도움이 되셨죠.

성 회장 | 아 그럼요(웃음). 그때 돈으로 5만원이면 참 큰돈이었는데요. 아버지께서는 돈은 버는 것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보신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게 버릇이 돼 제가 평생 이렇게 많은 돈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어요(웃음). 그 훈련을 시키신 겁니다. 실수나 실패에 대해선 절대로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거짓말에 대해서는 호되게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네 자로만 남을 재지 말라”고 하신 말씀도 기억이 나네요. 한번은 우리 공장직원이 공장에서 결혼식도 안 올리고 같이 산다고 빈정대면서 “애들 수준이 이렇다”고 말씀드렸을 때 당연히 “고얀 놈들” 이러실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네 자로만 재지마라. 무슨 사정이 있을 수도 있겠지”라고 하시는 겁니다. 

손 교수 | 평생을 의류업에만 종사해 오셨는데요. 어떤 계기로 이 업종에 들어오신 건지 궁금합니다.

성 회장 | 아주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됐는데요.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회사가 서울통상이란 가발, 스웨터 수출 업체였습니다. 시험 쳐서 뽑는 데가 마침 거기뿐이었죠. 1972년 서울통상에 입사해 유럽 거래선, 그중에서도 스웨덴 거래선을 담당했는데, 그 사람들이 정말 저를 형제처럼 잘 대해줬습니다.

그후 제가 파트너로 영원무역을 함께 창업해 바잉 에이전트(무역 대리점) 일을 몇년 했습니다. 옛날부터 제가 거래하던 스웨덴 거래선이었는데, 그 사람들은 항상 저 때문에 돈 벌었다며 고마워하고, 제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도와줬어요.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입니다. 그때 인간관계나 신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바잉 에이전트를 하는 데 한계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차라리 제조업에 전념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양파 씨를 갖고 양파 농사를 짓는 것이나 옷을 만드는 제조업이나 다 비슷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의류 제조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겁니다.

그러다 10년 후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제가 공동창업자 두 분의 지분을 모두 인수하고 비약적인 성장을 해 오늘에 이른 겁니다. 혼자 회사를 경영해 보니 우선 코스트(비용)가 적게 들고 의사결정이 빠르며, 경영에 혼선이 없게 됐어요. 그래서인지 1984년부터 1987년까지 3년간 정말 좋았습니다.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이 사옥(중구 만리동 영원무역 의류 수출 본부)도 그 무렵인 1988년 착공한 겁니다. 그 모습 그대로 사용하고 있죠.


사이클론으로 방글라데시 공장 침수 위기

영원무역이 방글라데시 치타공에 공장 문을 연 것은 1980년 무렵이다. 1995년 중국 칭다오, 2001년 중남미 엘살바도르에 의류 공장을 건설한 영원무역은 지난 2004년 베트남 하노이 인근 남딘에 의류공장을 열면서 4개 공장 체제를 갖췄다. 무엇보다 영원무역의 강점은 탁월한 현지화 전략이다. 핵심 생산시설인 방글라데시만 해도 치타공에 4만여명, 다카에 9000여명의 근로자가 근무하는데, 이 중 한국인 파견 기술자는 20명 미만이다. 현지 최고 책임자로부터 핵심 사업부서장 자리가 방글라데시 현지인들이다 보니 거의 완벽하게 현지화됐다는 평가다. 

손 교수 |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방글라데시를 생산지로 선택하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것 같습니다. 1980년 의류업계에서 최초로 해외진출을 하셨는데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는지요.

성 회장 | 가끔 사람들이 제가 방글라데시에 공장을 세운 것을 보고 “무슨 비전이 있고 현명한 통찰력이 있어서 그랬느냐”고 묻는데 그런 거 아닙니다(웃음). 돌이켜보면 방글라데시는 너무 빨리 갔다는 생각도 들어요.

1980년 방글라데시에 처음 진출할 때는 순전히 섬유쿼터(수출량 제한) 때문이었어요. 방글라데시든 어느 나라든 나가야 할 판이었거든요. 그때 덕성무역이라는 회사가 셔츠를 만들기 위해 스리랑카로, 유화통상이 블라우스를 생산하기 위해 온두라스로 갔어요. 우리가 세 번째로 방글라데시에서 아웃터 웨어를 생산하기 위해 갔던 겁니다. 그때가 1980년 5월입니다.

솔직히 1992년까지는 한국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방글라데시에서 옷 만드는 비용이 더 들었어요. 다만 섬유쿼터 규제를 받지 않다 보니 우리 주력 시장인 유럽에 제한 없이 수출을 할 수 있었던 것에 강점이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점차 시장에서 제품 공급 능력에 대한 신뢰를 쌓아갔죠. 처음부터 우리는 타깃이 유럽, 그것도 스웨덴 시장이었어요. 미국 시장은 엄두도 못냈죠.

그러던 중 1990년 방글라데시에 사이클론이 불어와 새로 지은 공장이 바닷물에 다 잠기는 일이 발생했어요. 그 일로 옷을 30만장 정도 잃어버렸죠.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이 정확히 4월29일이었습니다. 만조 때 몰아친 사이클론이 우리 공장 내부를 싹 쓸어버린 겁니다. 그때 방글라데시 현지 직원들은 제가 공장 문을 닫고 철수할까봐 걱정하는 눈치였어요. ‘저들은 정작 목숨을 바쳐서라도 공장을 리커버리(재건)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며 이렇게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데 이걸 뿌리치고 돌아갈 수가 없다. 그냥 여기서 한번 더 해보자’ 그랬던 겁니다.

그리고 난 뒤 홍수가 발생하더라도 괜찮을 높이로 공장을 지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공장을 확장하고 1994년부터 96년까지 굉장히 좋은 시절을 보낸 것 같습니다. 그때만해도 미국 경기가 좋았거든요. 무엇보다 중산층 규모가 커졌는데, 결국 우리가 만드는 옷들이 미국 중산층들이 입는 옷이었거든요. 그래서 대규모 성장이 이뤄진 겁니다.

손 교수 | 영원무역처럼 해외생산 비중이 높은 기업에게는 현지화가 중요한 과제인 것 같은데요. 그게 결국 따지고 보면 다문화 경영의 일환이라고 여겨집니다. 요즘 많은 중소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는데 걸림돌이 현지화 문제인데요. 영원무역과 성 회장님께서는 이를 어떻게 잘 진행하셨는지 그 노하우를 좀 알려주십시오.

성 회장 | 한국기업이 해외에 투자하면 공장장도 한국 사람이 하고 핵심 인물은 다 데려갑니다. 그래선 현지화가 안 됩니다. 현지 사람이 사장 노릇을 해야 해요. 원래 저는 처음부터 방글라데시에서 그렇게 크게 사업을 벌일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이렇게 됐는데요. 지금 방글라데시 공장은 99.9%가 현지인이에요. 매니징 디렉터부터 거의 모두가 현지인으로 구성돼 있어요. 의류 제조업에는 종업원이 4만명 정도 되는데 상주하는 한국인이래야 기술자 4명밖에 없어요. 물론 이 사람들이 없다고 공장 운영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에요. 현지 진출에 성공하려면 완전한 현지화를 목적에 두고 가야 합니다. 영어 사용이 현지화에 필수적이에요. 소위 문화적인 차이라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을 잘해서 극복해야죠.


> 메이크어위시를 통한 환우가족 캠핑용품 지원사업.

손 교수 |
보통 기업들은 해외 공장하면 단순 생산기지라고 여기는데 영원무역은 해외에서 연구 개발부터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게 놀라운 일이네요. 시행착오는 없었나요.

성 회장 | 처음에는 힘들었습니다. 한국 사람을 파견해서 운영하는 데 힘이 많이 들었죠. 그래서 1990년께 영국 마크앤드스펜서에 납품하던 회사의 의류 생산 전문가를 책임자로 데리고 와서 그 사람에게 방글라데시 대학, 대학원 졸업자들을 가르치게 한 겁니다.

그때 그 사람들이 최고 책임자로 있는데 업무 수준이 높아요. 중국에 직원이 7000명 정도 근무하는데요. 한국인은 간부 관리자, 기술자를 포함해서 5명이 있고, 공장장들은 다 영어를 잘하는 현지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누가 지휘하느냐 하면 바로 방글라데시에 있는 글로벌 생산 총책임자가 하고 있어요. 중국은 물론 방글라데시, 베트남 생산이 모두 그 사람 관할이죠. 방글라데시 인력을 써서 국제화에 성공한 겁니다. 

지난 2011년 영원무역홀딩스는 매출 1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아웃도어 분야에서 영원무역은 국내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계열사인 골드윈코리아에서 생산되는 노스페이스, 에이글, 골드윈으로만 2011년 6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10년 연속 국내 아웃도어 매출 1위다. 2012년에도 매출 7000억원 달성은 무난해 보인다.  


손 교수 | 영원무역은 회사 설립 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재무적 기반이 그만큼 탄탄하다는 뜻인데요. 어떤 비결이 있습니까.

성 회장 |
저희는 지금까지 크고 작은 어려움을 여러 번 겪어봤지만 펀더멘털(기초 여건)을 해칠 만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1995년 중국에 공장을 세우고 2004년 베트남에 공장을 세워 방글라데시를 포함해 세 나라에서 제품을 생산하다 보니 소위 컨트리리스크(국가 위험)가 잘 분산돼 있어요. 지금은 엘살바도르에서도 생산이 활발하고요.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 회사가 펀더멘털이 좋은 이유는 생산량의 99%를 에이전트를 통하지 않고 직거래로 해외 바이어에게 공급해서라고 봅니다. 해외인력 대부분을 현지에서 채용하고 생산량의 95% 이상을 자가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도 이유라고 할 수 있죠. 하청 생산이 거의 없어요. 그러다 보니 경영 로드가 더 걸리고 때에 따라서는 비용도 더 들지만 품질이 좋고 바이어들에게 안정적으로 물건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어떤 제품은 방글라데시에서 원단 제조부터 만들기 시작해 한 달 이내 한국에 옷을 보낼 수 있어요. 이건 다른 회사에서는 쉽지 않은 일인데요. 이런 것들이 바이어들에게 좋은 서비스로 이어지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2013년 세계경기가 어떨지 궁금해 하는데, 예약 주문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시장 상황이 나쁘지 않습니다.  


10년 연속 국내 아웃도어 매출 1위

영원무역이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하는 비결은 높은 기술력에 있다. 경기도 성남에 1976년 국내 처음으로 다운의류 생산공장을 세워 생산한 것이나 1986년 고어텍스 생산을 처음 시작한 것도 영원무역이다.

몸에 열이 많이 발생하는 것과 체온 유지가 필요한 부분을 고려해 재킷을 33개 공간으로 나눠 구스다운의 양을 다르게 집어넣은 써밋재킷과 볼타입의 써모볼 재킷도 영원무역의 기술력이 만든 제품들이다. 성 회장은 섬유산업이 사양사업으로 분류되던 1990년대부터 ‘하이테크 섬유업’을 주창해왔다. 그런 성 회장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영원무역의 다양한 생산 기술력은 현재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손 교수 | 1980년대 중반 아웃도어 시장을 블루오션이라고 판단하고 큰 회사들이 지저분하다고 꺼려하시던 다운점퍼로 승부를 걸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말하는 업의 개념을 확실히 파악하고, 전문가적인 안목으로 흐름을 남보다 먼저 착안해 선택과 집중하신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성 회장 | 35년 전 우리가 스키웨어, 다운웨어로 비즈니스를 시작한 것은 쿼터가 없는 데다 수량 대비 고단가 제품이어서 공장 규모에 비해 매출을 크게 늘릴 수 있었습니다. 1979년부터 몇년간 국내에서 다운웨어 붐이 일었어요. 그때 영원무역이 국내 유명 브랜드 제품을 다 만들었죠. 그것이 의류 산업 부흥에 크게 기여했다고 봅니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지난 10여년간 우리 섬유업계는 니트(편물) 방식으로 만든 옷의 비중은 커지고 우븐(직물) 비중은 줄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메리노 울(Merino wool), 하이퍼포먼스(고기능성) 폴리에스터 등 니트 의류 제조 판매에 투자하고 있어요. 이런 제품은 소위 니트 전문회사들조차 꺼려하는 일이거든요. 생산량도 적고 뭐 그래서요. 그런데 저는 이것도 잘 하면 시장이 커지고 기술, 기능이 나아지면 다시 매출도 증가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가 메리노 울 일관공정을 베트남 공장에 만든 겁니다. 언젠가 방글라데시에서도 할 수 있을 거고요. 저는 공장을 지을 때 항상 시장 접근이 좋은 곳을 선택합니다. 지리적인 것뿐 아니라 관계 등 여러 가지 혜택이 있는 곳에 가요. 학교에서 배운 사업입지론이 많은 도움이 됐죠. 중국 칭다오 지모시에도 공장이 있는데 이건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하기 위해서예요. 세계 시장 경쟁력은 떨어지지만 중국 내에서의 경쟁력은 충분합니다.

손 교수 | 평소 ‘옷은 과학’이라고 말씀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오늘날 영원무역이 이렇게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의류기업으로 성장한 데는 이런 장인정신이 깃들여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늘 새로운 기술을 확보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무슨 특별한 비결이 있습니까.

성 회장 | 저희는 항상 새로운 컴포넌트(부품), 새로운 거래선, 새로운 시장, 새로운 제품을 연결시키는 데 익숙해 있어요. 리소스풀(좋은 구성요소)한 것 위에 부품과 기술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가 우리 사업의 요체죠. 투자만 해도 그렇습니다. 100% 완벽하게 준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70% 정도 투자해 놓고 시장 상황에 따라 완결 투자를 합니다. 그러니 남들이 보기에 위험하게 보일 수 있을 겁니다. 또 어떤 이들은 그럽니다. 어떻게 그렇게 시장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하느냐고 말이죠. 그런데 조건이 끝없이 변하는 게 시장이에요. 시장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완벽하게 계산이 나올 때까지 안 움직이지만 우리는 70% 정도 갖춰졌다고 판단되면 엉성하게라도 시작합니다. 저는 그게 투자 성공률이 훨씬 높다고 생각합니다.

손 교수 | 창업한 뒤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고 안정적으로 기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30%의 불확실성을 유연하게 대처하는 이 7대 3 법칙을 잘 활용하신 거로군요.

성 회장 | 어떻게 보면 그게 기업 내 DNA가 됐다고 할까요. 저희는 계속 투자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정확하게 앞으로 올 일을 100% 모르는 상태에서 투자하고 상황이 진척되면 거기에 맞게 조절, 대응하면 되니까요.

얼마 전 베트남에 나일론, 폴리에스터 염색 시설을 공장 내 준비하는데 보니까 계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나일론 설비 계획을 취소하고 방글라데시 공장에 이미 있는 시설을 업그레이드시켜 여기는 폴리에스터만 (생산)하는 걸로 결정했는데 그걸로 제가 600만달러를 아꼈습니다. 지금은 600만달러를 아끼는 것이지만 그게 나중에는 2000만달러의 세이빙(절약)도 될 수 있거든요. 경쟁력이 없으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돌이켜 보건대 우리 회사는 수없이 작은 실패는 있었지만 전체로 볼 때는 항상 괜찮았던 것 같아요. 내년(2013년)은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주주들이나 구성원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1만20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베트남 남딘 공장(위)과 총 대지 면적이 6만4171㎡에 달하는 영원무역 방글라데시 다카 공장 전경.

손 교수 |
세상 일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실패하는 기업의 대다수가 어느 정도 선을 넘어가 일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니겠습니까.

성 회장 |
주위에서 그럽니다. “왜 영원무역은 누구누구처럼 하지 않느냐”고요. 그런데 세상 일에 각자에게 익숙한 자기만의 방법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업에 있어서 매버릭 어프로치(Maverick approach), 그러니까 기발한 방법으로 사업의 성패를 거는 스타일로 성과를 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영원무역과는 맞지 않는 방식이라고 봅니다.

기발한 방법으로 리스크를 높이는 것은 주주들을 위해서도 좋을지 확신이 없어요. 15년 전 노스페이스를 인수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장부까지 다 보고 결국 안 하기로 했어요. 만약 제가 브랜드 사업을 잘 못하면 지금 거래선이나 바이어들에게 누를 끼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해서였죠. 이제까지 영원무역은 고객과의 신용을 바탕으로 성장을 해왔는데 인수로 신용을 해칠까 걱정한 겁니다.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경영자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많은 이해관계자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팝송 ‘더 영 원스’에서 사명 따와

성 회장은 가수 클리프 리처드의 노래 ‘더 영 원스’(The Young Ones)에서 회사명을 따왔다. 비록 노래제목은 ‘젊은이’를 뜻하지만 그는 ‘오랫동안 정상에 서 있으라’는 생각에 길 영(永)에, 으뜸 원(元)자를 썼다. 그러면서도 영어로 된 회사명은 ‘youngone’이다. ‘도전하고 또 도전하되 반드시 세계 최고 제품을 만들라’는 성 회장의 생각은 사명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손 교수 | 결국 기업 경쟁력이라는 것이 사람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원무역은 금연, 능통한 영어실력, 정직 이 세 가지 기준으로 직원을 채용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를 특별히 고집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성 회장 | 제가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고요. 나중에 뽑다 보니 제가 그런 직원들을 좋아하더라고요(웃음). 솔직히 초창기에 스펙 좋은 젊은 사람들이 영원무역에 왔겠습니까. 삼성이나 럭키(현 LG) 같은데 가지.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요. 우리는 나를 포함해서 B급 인재들인데, B급들이 모여서 A급 퍼포먼스를 내면 그게 효율성 면에서 더 좋은 것 아니겠냐고요.

제가 요즘 경남 창녕에 한옥을 짓는데요. 저는 금강송 같은 좋은 나무는 잘 쓰지 않아요. 그건 궁궐 지을 때나 쓰는 것이니까요. 그건 저하고 맞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강원도에서 소나무를 사다가 그걸로 쉽게 집을 짓습니다. 그렇게 80% 수준의 집을 지은 후 관리를 잘해 10% 정도 집이 좋아지면 결국 90% 아니겠어요. 그런데 소위 100%짜리 집을 비싸게 지어놓고 관리를 못하면 60% 수준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겁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B급 인재들이 모여 사업에서 1등을 하면 더 좋겠지만 업계 상위권에만 들어도 성과가 있다고 봅니다. 담배는 남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그런 거고, 국제적인 비즈니스를 하는데 영어는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런 기준을 삼고 있는 겁니다.

영원무역 사원의 90% 정도가 영어를 잘합니다. 하다못해 총무과 직원도 영어를 잘해요. 그러니 활용도가 높죠. 총무과 직원을 영업으로 보낼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 회사가 22년째 금연을 하고 있는데요. 해외 공장은 한 번도 흡연을 허락한 적이 없어요. 또 우리 영원무역은 여성인력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여성들에게 의사결정권을 많이 부여하고 있어요. 물론 기업경영 측면에서 보면 여성인력이 비용이 더 드는 측면도 있습니다. 출산도 있고 그래서요. 대신 생산성은 여성인력이 훨씬 높은 측면이 있습니다. 

손 교수 | 듣고 보니 B급 인재라도 잘 길러 A급 퍼포먼스를 내도록 하라는 말씀은 현재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CEO들에게 좋은 조언이 될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인재를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좋은 인재관리 비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성 회장 | 간단히 말하면 퍼포먼스에 오리엔트 된(중점을 둔) 결정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체면 따위는 생각하지 말고 말이죠. 그리고 제가 동료들에게 맨날 강조하는 말이 있는데요, 세 단계를 봐야 한다는 겁니다. 목전에 있는 것 하고 중기, 장기 이렇게 세 가지 말입니다. 말하자면 준법이라든지 자연보호라는 건 장기적인 당면과제죠.

물론 단기적인 것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중기나 장기로 성공할 기회가 없어지겠지요. 아무리 높은 철학을 논하더라도 눈앞의 웅덩이에 빠지면 되겠습니까. 보통 단기라면 1년, 중기라면 2~5년 사이고 장기는 5년 이상이죠. 오늘의 문제도 굉장히 중요한 법입니다. 오늘날 경영자들이 세세한 문제에 대해 등한시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는데 시시콜콜하다는 것이 자기 보기에 그런 것이지 문제에 있어서는 핵심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작은 조짐이라도 우습게 알아서는 안 된다는 걸 항상 강조합니다.

손 교수 |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도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성 회장 | 솔직히 저는 불황기에 투자하지 호황기에 투자하지 않습니다. 호황기 때는 경쟁이 너무 심해 효율 높은 투자를 하기가 힘들어요. 현재 R&D 총책임자는 미국 사람인데요. 새로운 섬유 소재에 대한 연구 투자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폴리에스터에 대한 투자, 새로운 파이버(섬유소재 일종)에 대한 연구, 특수한 다운웨어 개발 등을 말이죠. R&D는 스위스 회사들에게도 위탁 중이고요. 대구와 경기도 양주에 대규모 섬유 R&D센터를 짓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장기계획이라는 게 이런 겁니다.

성 회장과 영원무역의 강점은 투명경영에 있다. 이런 점을 인정받아 성 회장은 지난 2009년 제3회 언스트앤영 최우수 기업가상(Ernst & Young Entrepreneur Of The Year)을 수상했다. 이 상은 지난 1986년 미국에서 처음 도입된 국제 규모의 경영대상으로 △기업가 정신 △혁신성 △성실성 △재무성과 △전략적 방향 △국가 및 세계 경제에 대한 영향력 등 6가지 항목에 대해 심사해 수상자를 결정한다.

손 교수 | 많은 사람들이 요즘 젊은이들은 기업가 정신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요. 제가 보기에는 성 회장님처럼 뭐든지 한 우물을 잘 파야 세계적인 인재들이 나올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난 2008년 5월 중국 순방 중인 이명박 대통령(맨 오른쪽)이 영원무역 칭다오 공장을 방문, 성기학 회장(대통령 왼쪽) 안내를 받으며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성 회장 |
자기(자식이) 스스로가 하도록 놔둬야 해요. 부모가 어찌 다 해줄 수 있겠습니까. 회사에서 스펙대로 사람을 뽑는다고 치면, 그 스펙이 다 뭐겠습니까. 다 과외공부의 소산물이죠. 그건 기업에 별 도움이 안 돼요. 가끔 성적이 나쁜 지원자에게 학교 다닐 때 뭘 했는지 물어봐요. 그래서 그게 납득할 수준이면 괜찮습니다. 부모가 매사를 과외공부처럼 요약을 해주면 되겠습니까.

손 교수 | 지금까지 성 회장님이 살아온 발자취 그 자체가 도전정신이자 개척정신이라고 보여집니다.

성 회장 | 제 학창시절에는 졸업 후 은행이나 대기업에 가는 것이 최고였어요. 허드렛일을 하더라도 S물산에 가서 하는 게 더 낫다는 심리라고 할까요(웃음). 겉모양만 보고 하는데, 요즘 젊은이들이 대기업을 선호하는 건 다 갖춰진 집단에 들어가서 편하게 일하겠다는, 말하자면 공짜 심리도 있을 겁니다. 인생에 있어서도 단기, 중기, 장기 계획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과외공부로 쌓은 스펙, 그건 사회생활에 있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데 서울대 나온 게 뭐가 중요합니까. 세계적인 경쟁자는 그 업종에서 실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새로운 변화에 신속히 적응하는 기민성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워낙 기업 환경과 세상의 변화가 빨리 변하니까요.  

손 교수 | 모름지기 경영자라면 자기 브랜드에 대한 욕심이 있을 수 있는데요. 회장님께서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ODM 방식으로 회사를 경영해 나가실 계획이신지요.

성 회장 | 그것도 허영이에요. 다들 ‘자기 브랜드 해야지’ 뭐 이렇게 생각하는데요. 자기 브랜드를 하든 무엇을 하든 사회이익이 되고 주주들이나 구성원들에게 잘할 수 있으면 되는 겁니다. 자기 브랜드를 하는 게 꼭 나으냐? 나을 때도 있지만 못할 때도 있거든요. 남이 한다고 해서 나도 무리하게 할 필요는 없는 겁니다. 다양성을 인정해줘야죠. 저는 10년 후 영원무역이 여러 면에서 톱클래스가 됐으면 합니다. 그게 우리에게 장기 투자하는 주주들에게 큰 희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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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내려온 봉사 정신 Q&A


선친, 창녕에서 농촌운동 실천

성기학 회장은 경남 창녕의 유서 깊은 양반가문 출신이다. 성 회장 집안은 특히 지역 주민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것으로 유명하다. 1876년 온 나라에 흉년이 들자 성 회장의 고조부가 자신의 땅을 팔아 주변 사람들을 구제했다는 것은 지금도 지역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다. 그의 부친인 성재경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 사재를 털어 집 바로 앞에 ‘지양강습소’라는 학교를 세워 인재 양성에 나섰고, 새마을운동보다 10년 앞선 1963년 경화회를 조직해 농민 계몽과 농업 기술 보급 운동을 펼쳤다.

오늘날 창녕이 전국에서 유명한 양파생산지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성 회장은 “서울에서 출판업을 하시던 선친께서는 전쟁 통에 고향으로 피란을 간 후 가난한 지역 주민들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냥 창녕에 눌러 앉으셨다”고 설명했다. 1990년 방글라데시에 대홍수가 발생해 생산시설이 물에 잠겼지만 현지 근로자의 피해복구 의지에 감동받아 공장을 이전하지 않고 방글라데시에서 성공을 거둔 성 회장의 경험과 비슷하다.    



Tip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 국민기업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 국민기업


방글라데시 치타공 공장 내 메디컬센터.

방글라데시에서 영원무역은 국민기업과 같다. 설립 초기부터 우수한 인재를 선발해 채용한 결과 방글라데시 사람들에게 영원무역은 꿈의 직장으로 불리고 있다. 지난 2010년 지역 소요 사태로 공장이 피해를 입자 방글라데시 현지 방송이 영원무역을 치켜세우는 프로그램을 계속 내보낸 것도 영원무역의 기여도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영원무역은 공장 주변인 치타공 일대가 사막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170만그루의 식목 사업을 벌였다. 다카에서 공장 내 폐수 처리 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친환경 기업의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유엔 산하 국제백신연구소의 결핵 퇴치 운동, 방글라데시 내 일본 뇌염 예방 백신 개발, 마이크로금융(극빈자대출) 프로그램을 후원하는 일도 현지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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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무역의 사회공헌 활동

‘기업 이익은 사회환원해야 한다’가 경영 모토


대한적십자사, 월드비전과 함께 한 몽골 어린이 의류지원사업. .

성기학 회장은 ‘기업 이익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경영 모토다. 사회공헌활동도 다양해 영원무역은 2000년부터 2012년까지 500만장의 의류 및 용품을 터키, 몽골,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 전 세계 25개국에 기부하는 활동을 벌여왔다.

자매회사인 골드윈코리아는 2011년 월드비전과 함께 아프리카 돌로 지역 식수 개선사업을 지원했다. 또 국내에서는 메이크어위시재단과 함께 난치병 아동을 지원하고 있다. 청소년 지원사업도 활발하게 벌여 2007년부터 장학금 지원 사업을 실시 중이다. 2012년 3월부터는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와 함께하는 ‘청소년 문화 만들기’ 지원사업도 벌이고 있다.     

▒ 성기학 회장은… 1947년 서울 출생. 70년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74년 영원무역 창업, 84년~현재 영원무역 대표이사 회장. 92년~현재 골드윈코리아 대표이사. 선농문화포럼,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현).

▒ 손욱 교수는… 1945년 경남 밀양 출생. 67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75년 삼성전자 입사. 98년 삼성전관(현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 99년 삼성종합기술원 원장. 2004년 삼성인력개발원 사장. 2008년 농심 대표이사 회장. 2010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초빙교수(현).
기사: 송창섭 기자 (reals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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